손골편지 스물다섯번째
지난 5월 23일 토요일, 예수성심상이 오랫동안 닦지 않아 이끼를 제거하고 색을 칠하려고 준비하는데 오랜만에 김진수 신부가 성지에 들렀습니다. 김신부는 암투병 중인 제 친구입니다. 김 신부 왈, 이 성상이 미리내 천주성삼 수사님들이 만드신 거래요. 그가 그 수도회 소속이거든요. 덕분에 성상을 제작한 수도회로 보내어 깨끗이 닦고 다시 도색해서 5월 30일에 성지로 다시 모셨습니다. 새 성상보다 더 나아진 것만 같아 타볼산에서 변모하신 예수님이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신기해요. 어쩌면 딱 그날, 그 시간에 하필이면 김 신부가 성지에 왔는지 말이에요. 덕분에 예수성심성월을 신비로운 감사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마리아 동산으로 오르는 계단을 약간 옆으로 옮기는 대신에 물길을 넘는 홍예교를 놓았습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으나 노력만큼 아름다운 다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무지개다리를 조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은인에게 감사합니다.
십자가의 길 옆의 공터는 잡목과 잡초로 우거졌던 곳인데 이제는 누구나 쉬다 갈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6인용 벤치도 2개, 그네 의자도 설치했습니다. 그네 의자는 성지에 자주 오는 신부님이 마련해 주었고요. 사람이 다니는 길에는 콩자갈을 깔아서 보이기에도, 걷기에도 괜찮습니다. 심지어 맨발로 걸어도 무난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자연 속에서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어 흡족합니다. 이 공간을 ‘도리 쉼터’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도리 십자가와 십자가의 길 입구의 안내판은 장기 보존을 위해 오일을 칠했습니다. 확실히 새 것처럼 보이고 글씨도 선명해졌습니다.
마을 입구에 벽화가 새로 탄생했습니다. 공공 구역이고 종교가 다른 분들도 계신데 손골성지와 예수님을 그려주신 마을 주민들에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또한 마을에서 우리 성지에 대한 글을 작성해 주셨습니다. 성지 홍보가 아니라 마을 홍보의 차원인데 글솜씨가 대단들 하십니다. 양해를 얻어서 우리 홈페이지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성지 홈페이지 주소는 아시지요? songol.or.kr
무명순교자 묘역으로 오르는 길에 만든 샘물에 올챙이와 도룡뇽 새끼가 부화했는데 제법 자랐습니다. 얼른 자라서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넓은 세상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생겼습니다. 도룡뇽 새끼가 더디 커서 올챙이가 개구리 되면 다 잡아먹을까봐 말입니다. 그래서 도룡뇽 새끼들은 고마운 분이 다른 곳으로 옮겨주었습니다. 다들 어서 성체가 되어서 숲을 누비고 다니기를 바랍니다.
7월은 비도 자주 오고 기온과 습도도 높지만 대신 개울 물소리가 기가 막힙니다. 오메트르 쉼터에서 듣는 비소리도 좋습니다. 아, 그리고 쉼터의 빗물받이를 구해왔습니다. 전에는 빗물 떨어지는 자리에 빈 화분을 놓았었는데 아주 그럴싸한 녀석을 발굴해서 싼 가격에 데려왔습니다.
지난 4, 5, 6월 세 달은 참 많은 순례교우들이 다녀가셨습니다. 오신 분들이 다른 교우들에게 소개해 줄만한 고요하고 편안한 성지를 가꾸는데 운영위원과 봉사자들, 직원 모두가 고민하고 애쓰고 있습니다.
암튼 제가 생각해도 도심 속에 이만한 신앙의 쉼터를 찾기는 쉽지 않다고 여깁니다. 예전에 선교사 신부님들이 머물렀던 그 자리, 이제는 현대의 교우들이 몸도 쉬고 숨도 쉬고 맘도 쉬는 공간의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 다들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옛 어른들은 베드로 바오로 축일이 되면 우기가 시작된다고 하셨으니 이젠 비가 자주 많이 오는 시기입니다. 덥고 습하다고 너무 집에만 계시지 마시고 어느 성지라도 좋으니 떠나십시오. 성지순례는 후회 없는 선택이니까요. 모쪼록 하느님의 축복 아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손골에서 다미아노 Dre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