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순교자 4위
무명 순교자 4위
이름 없이 증언한 신앙,
손골 무명 순교자 4위
병인박해 때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네 분의 무명 신자들.
이름은 전해지지 않지만,
그들의 믿음은 오늘도 손골성지 안에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한덕운 토마스는 박해 속에서도 순교자들을 돌본
영성의 모범으로 전해집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시신을 거두는 활동을 이어가다 체포되어,
남한산성 동문 밖에서 참수로 순교하였습니다.

병인박해와 순교
병인박해(1866) 당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손골 교우촌에 숨어 생활하던 신자 네 분이 체포되었습니다. 이들은 수원으로 압송되던 중, 신봉동 개울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선참후계(先斬後啓)’, 곧 “먼저 참하고 나중에 보고하라”는 명령이 내려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공식 재판 절차 없이 현장에서 처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의 이름과 신상은 전해지지 않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순교하였다는 사실은 지역 교회 안에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서봉부락 돌무덤
사람들은 길가에 버려진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어, 신봉동 개울가 작은 언덕에 구덩이를 파고 돌로 덮어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의 옛 지명이 서봉(栖鳳)이라 하여, 이 묘는 오랫동안 ‘서봉부락 무명 순교자 돌무덤’으로 불리며 전해졌습니다.
이후 행정구역 개편(1914년)으로 신리와 서봉리가 합쳐져 신봉리가 되었고, 현재는 신봉동으로 불립니다.
미리내성지 이장
수원교구는 순교자 현양 사업의 일환으로, 1976년 12월 17일 신봉동에 있던 네 분의 유해를 미리내성지 무명 순교자 묘역으로 옮겨 모셨습니다. 이 해에는 다른 지역에 흩어져 있던 무명 순교자들의 유해도 함께 이장되었습니다.
손골성지로의 안치
손골성지는 이 네 분이 손골 교우촌에서 생활하다 순교하신 분들이라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이에 ‘순교자 유해 안치를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준비를 거쳐, 2013년 10월 22일 네 분의 유해를 손골성지 내로 옮겨 모셨습니다.
묘 조성 시에는 지하에 석실을 마련하고, 유해는 각각 네 개의 항아리에 모셨습니다. 봉분은 하나로 조성하여 합장 형식으로 안치하였습니다.
현재 확인된 바에 따르면 네 분 가운데 남성 두 분, 여성 한 분으로 판별되었으며, 한 분은 DNA 채취가 이루어지지 않아 성별을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손골이 기억하는 순교
이 네 분은 이름도, 생애의 자세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믿음을 간직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전해집니다.
손골성지는 이 무명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이름이 남지 않았더라도 신앙의 증언은 사라지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이곳은 알려진 성인들뿐 아니라, 이름 없이 순교한 이들까지
함께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손골성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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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골마리아상’ 축복식 안내
손골성지 마리아 동산에 새롭게 마련된마리아상 축복식이 아래와 같이 거행됩니다.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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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에서 진행하는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 순례가 손골성지에서 아래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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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수지지구 순교자 현양대회 안내
수지지구 순교자 현양대회가 순교 160주년을 기념하여 아래와 같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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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이 증언한 신앙, 손골 무명 순교자 4위
병인박해 때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네 분의 무명 신자들. 이름은 전해지지 않지만,
그들의 믿음은 오늘도 손골성지 안에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한덕운 토마스는 박해 속에서도 순교자들을 돌본
영성의 모범으로 전해집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시신을 거두는 활동을 이어가다 체포되어,
남한산성 동문 밖에서 참수로 순교하였습니다.

병인박해와 순교
병인박해(1866) 당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손골 교우촌에 숨어 생활하던 신자 네 분이 체포되었습니다. 이들은 수원으로 압송되던 중, 신봉동 개울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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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름과 신상은 전해지지 않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순교하였다는 사실은 지역 교회 안에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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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행정구역 개편(1914년)으로 신리와 서봉리가 합쳐져 신봉리가 되었고, 현재는 신봉동으로 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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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 조성 시에는 지하에 석실을 마련하고, 유해는 각각 네 개의 항아리에 모셨습니다. 봉분은 하나로 조성하여 합장 형식으로 안치하였습니다.
현재 확인된 바에 따르면 네 분 가운데 남성 두 분, 여성 한 분으로 판별되었으며, 한 분은 DNA 채취가 이루어지지 않아 성별을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손골이 기억하는 순교
이 네 분은 이름도, 생애의 자세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믿음을 간직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전해집니다.
손골성지는 이 무명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이름이 남지 않았더라도 신앙의 증언은 사라지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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