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땅, 손골

무명 순교자 4위

병인박해 당시 손골에서 생활하던 신자 4위가 체포되어 수원 신봉동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이름과 행적은 전해지지 않지만, 공동체는 그들을 기억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길가에 버려진 시신을 거두어 작은 언덕에 돌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서봉부락 무명 순교자 돌무덤’으로 전해졌고, 지금은 손골성지 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름은 남지 않았지만, 신앙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3대(三代) 순교자

손골에는 이 요한과 그의 아들 이 베드로, 그리고 손자 이 프란치스코로 이어지는 3대 순교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충청 당진 출신으로 박해를 피해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1871년 3월 19일, 세 사람은 서울 좌포청에서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신앙은 한 세대에서 멈추지 않고, 세대를 넘어 전해졌습니다.
손골은 신앙이 가문 안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증언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무명순교자묘
이씨 3대 순교자

무명 순교자 4위

병인박해 당시 손골에서 생활하던 신자 4위가 체포되어 수원 신봉동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이름과 행적은 전해지지 않지만, 공동체는 그들을 기억해 왔습니다.
사람들은 길가에 버려진 시신을 거두어 작은 언덕에 돌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서봉부락 무명 순교자 돌무덤’으로 전해졌고, 지금은 손골성지 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름은 남지 않았지만, 신앙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3대(三代) 순교자

손골에는 이 요한과 그의 아들 이 베드로, 그리고 손자 이 프란치스코로 이어지는 3대 순교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충청 당진 출신으로 박해를 피해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1871년 3월 19일, 세 사람은 서울 좌포청에서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신앙은 한 세대에서 멈추지 않고, 세대를 넘어 전해졌습니다.
손골은 신앙이 가문 안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증언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무명순교자묘
이씨 3대 순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