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리, Dorie) 헨리코 신부
김(도리, Dorie) 헨리코 신부
복음을 위해 자신을 내어준 젊은 선교사
성 김(도리) 헨리코 신부(1839–1866)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조선 선교를 위해 파견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입니다.
젊은 나이에 사제품을 받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낯선 땅으로 향했던 그는,
병인박해 속에서 체포되어 1866년 3월 7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그 선택은 한국 교회 역사 안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1. 조선 선교를 향한 부르심
19세기 조선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엄격히 금하던 시대였습니다. 선교사들에게 조선 입국은 곧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도리 신부는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에 응답하여 조선 선교를 자원하였습니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해외 파견이 아니었습니다. 순교의 가능성을 충분히 알고도 감당한 결단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자신의 미래와 안전을 기꺼이 내어놓았습니다.
이 결단은 훗날 순교로 이어졌지만, 이미 조선으로 향하던 그 순간부터 그는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 사제였습니다.
2. 손골에서의 준비와 침묵의 시간
조선에 입국한 도리 신부는 곧바로 공개 사목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외국인 신부는 언제든 발각되면 체포될 위험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교우촌에 머물며 우리말을 배우고 조선의 풍습과 문화를 익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가 머물렀던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손골 교우촌입니다.
손골은 박해를 피해 형성된 신앙 공동체였으며, 선교사들이 사목을 준비하던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도리 신부는 교우들과 함께 생활하며 조용히 기도하고 배웠습니다.
손골에서의 시간은 화려한 활동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름 없이 머물며 복음을 위한 기초를 다지는 자리였습니다.
이 준비의 시간은 그의 사제직을 깊이 있게 다졌고, 훗날 순교의 순간까지 이어지는 영적 뿌리가 되었습니다.
3. 병인박해와 순교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되면서 조선 교회는 극심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신자와 선교사들이 체포되고 처형되었습니다.
도리 신부 역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습니다. 그는 신앙을 부인하지 않았고, 사제로서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1866년 3월 7일, 서울 새남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에 대한 완전한 증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선포하던 말씀을 삶으로 완성하였습니다.
4. 시성(諡聖)과 교회의 기억
도리 신부는 오랜 세월 한국 교회 안에서 순교자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03위 한국순교성인과 함께 시성되었습니다.
이 시성은 단지 개인의 영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교회의 순교 신앙이 보편 교회 안에서 공적으로 인정되었음을 뜻합니다.
그의 이름은 이제 한국 교회의 역사뿐 아니라, 전 세계 교회가 함께 기억하는 성인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5. 오늘 우리에게 남긴 의미
도리 신부의 삶은 활동보다 ‘준비’의 영성을 보여줍니다.
눈에 드러나는 성과보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다듬는 사제의 모습입니다.
그는 손골에서 배웠고, 기도했으며,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준비는 순교로 완성되었습니다.
오늘 손골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은 그가 머물렀던 준비의 자리를 기억합니다.
현양비 위에 세워진 프랑스의 돌 십자가는 그의 고향과 순교의 땅을 연결하는 상징입니다.
그의 생애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복음을 위해 나는 무엇을 내어놓을 수 있는가.”
6. 맺음말
성 김(도리) 헨리코 신부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 안에는 복음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결단이 담겨 있었습니다.
손골은 그가 조용히 준비하던 자리이며,
새남터는 그가 생명을 내어준 자리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손골성지는
그의 침묵과 결단을 기억하며,
신앙 안에서 다시 시작하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장소입니다.


도리 신부에게 바쳐진 노래
1839년 9월 23일 프랑스 탈몽(St. Hilaire de Talmont)에서 태어나 교구 소신학교와 대신학교를 다니다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864년 5월 21일 사제가 되었다.
조선선교사가 되어 1865년 5월 27일 충남 내포지방에 도착하였고 6월 23일부터 조선대리감목구장(朝鮮代理監牧區長) 베르뇌(Berneux) 주교의 지시에 따라 손골에 머물며 우리나라 말과 풍습을 익혔다. 1866년 2월 27일 손골에서 체포되었고 3월 7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앙리 도리 신부님께 드리는 노래〉
어느 날 우리 방데 지방 깊은 곳에 한 사람이 났도다.
하느님이 이르시기를, 조선으로 갈 조선 사람을 보라.
그를 데려갈 날이 이미 정해져 있었도다.
주님이 작은 소리로 대모에게 속삭였으니,
그 이름 앙리(헨리코), 그 이름 앙리.
아! 슬프도다! 이 날 그를 자신의 날개에 태워 거기까지 데려가는구나!
우리는 그가 죽을 때까지 전해지는 소식밖에 들을 수 없겠구나.
머리를 쉴 돌도 몸을 숨길 곳도 없이,
성 앙리 축일이 다시 돌아올 때 그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를 보고 조선에서는, 지옥이 말하리라,
내가 두려워하는 이는 도리뿐이라고, 그때 하필이면 도리가 오는구나 라고!
아마도 그 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그의 머리를 베리라.
그리고 성 앙리의 축일이 이제 1년에 두 번 돌아오게 되리라.
피에 물든 월계관이 너의 이마를 에워싼 후,
주님이 그 관을 내게 주시기를 청하도록 나의 주보가 되어다오,
너와 나 둘 모두 그 순교의 월계관을 얻음이 내 바라는 행복이라.
성 앙리가 네게 미소 짓거든,
그에게 이 소원을 축제의 꽃다발처럼 바쳐다오.
우선 배를 타고 바다 넘어 마른 발로 조선에 가서
한 마리 새처럼 세상 끝까지 날아오르오.
거기에는 네 노래할 자리가 이미 마련되어 있으니, 복된 이방인이여,
네게는 매일 매일이 축제가 되리라, 나의 친구 앙리여.
이 노래는 예언처럼 되었다. 도리 신부는 1865년 5월 27일 한국에 도착하였고 1866년 3월 7일에 순교하였다. 그리고 1968년 10월 6일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에는 시성되어 성인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또 다른 헨리코 성인이 태어난 것이다. 도리 헨리코 성인의 축일은 9월 20일이다. 그래서 앙리(헨리코) 축일이 이제 1년에 두 번 돌아오게 되었다.
이 노래는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출간한 《순교자들과 시인들(Martyrs et Poètes)》에 수록되어 있다.
원래 책에는 멜로디만 있는데 손골성지에서는 곡에 화음을 붙이고 가능한 대로 가사의 내용을 살려 악보를 만들어 부르고 있다.

성 김(도리) 헨리코 신부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 안에는 복음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결단이 담겨 있었습니다.
손골은 그가 조용히 준비하던 자리이며,
새남터는 그가 생명을 내어준 자리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손골성지는
그의 침묵과 결단을 기억하며,
신앙 안에서 다시 시작하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장소입니다.
복음을 위해 자신을 내어준 젊은 선교사
성 김(도리) 헨리코 신부(1839–1866)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조선 선교를 위해 파견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입니다.
젊은 나이에 사제품을 받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낯선 땅으로 향했던 그는, 병인박해 속에서 체포되어
1866년 3월 7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그 선택은 한국 교회 역사 안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1. 조선 선교를 향한 부르심
19세기 조선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엄격히 금하던 시대였습니다. 선교사들에게 조선 입국은 곧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도리 신부는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에 응답하여 조선 선교를 자원하였습니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해외 파견이 아니었습니다. 순교의 가능성을 충분히 알고도 감당한 결단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자신의 미래와 안전을 기꺼이 내어놓았습니다.
이 결단은 훗날 순교로 이어졌지만, 이미 조선으로 향하던 그 순간부터 그는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 사제였습니다.
2. 손골에서의 준비와 침묵의 시간
조선에 입국한 도리 신부는 곧바로 공개 사목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외국인 신부는 언제든 발각되면 체포될 위험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교우촌에 머물며 우리말을 배우고 조선의 풍습과 문화를 익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가 머물렀던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손골 교우촌입니다.
손골은 박해를 피해 형성된 신앙 공동체였으며, 선교사들이 사목을 준비하던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도리 신부는 교우들과 함께 생활하며 조용히 기도하고 배웠습니다.
손골에서의 시간은 화려한 활동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름 없이 머물며 복음을 위한 기초를 다지는 자리였습니다.
이 준비의 시간은 그의 사제직을 깊이 있게 다졌고, 훗날 순교의 순간까지 이어지는 영적 뿌리가 되었습니다.
3. 병인박해와 순교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되면서 조선 교회는 극심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신자와 선교사들이 체포되고 처형되었습니다.
도리 신부 역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습니다. 그는 신앙을 부인하지 않았고, 사제로서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1866년 3월 7일, 서울 새남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에 대한 완전한 증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선포하던 말씀을 삶으로 완성하였습니다.
4. 시성(諡聖)과 교회의 기억
도리 신부는 오랜 세월 한국 교회 안에서 순교자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03위 한국순교성인과 함께 시성되었습니다.
이 시성은 단지 개인의 영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교회의 순교 신앙이 보편 교회 안에서 공적으로 인정되었음을 뜻합니다.
그의 이름은 이제 한국 교회의 역사뿐 아니라, 전 세계 교회가 함께 기억하는 성인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5. 오늘 우리에게 남긴 의미
도리 신부의 삶은 활동보다 ‘준비’의 영성을 보여줍니다.
눈에 드러나는 성과보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다듬는 사제의 모습입니다.
그는 손골에서 배웠고, 기도했으며,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준비는 순교로 완성되었습니다.
오늘 손골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은 그가 머물렀던 준비의 자리를 기억합니다.
현양비 위에 세워진 프랑스의 돌 십자가는 그의 고향과 순교의 땅을 연결하는 상징입니다.
그의 생애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복음을 위해 나는 무엇을 내어놓을 수 있는가.”
6. 맺음말
성 김(도리) 헨리코 신부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 안에는 복음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결단이 담겨 있었습니다.
손골은 그가 조용히 준비하던 자리이며,
새남터는 그가 생명을 내어준 자리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손골성지는
그의 침묵과 결단을 기억하며,
신앙 안에서 다시 시작하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장소입니다.


도리 신부에게 바쳐진 노래
1839년 9월 23일 프랑스 탈몽(St. Hilaire de Talmont)에서 태어나 교구 소신학교와 대신학교를 다니다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864년 5월 21일 사제가 되었다.
조선선교사가 되어 1865년 5월 27일 충남 내포지방에 도착하였고 6월 23일부터 조선대리감목구장(朝鮮代理監牧區長) 베르뇌(Berneux) 주교의 지시에 따라 손골에 머물며 우리나라 말과 풍습을 익혔다. 1866년 2월 27일 손골에서 체포되었고 3월 7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앙리 도리 신부님께 드리는 노래〉
어느 날 우리 방데 지방 깊은 곳에 한 사람이 났도다.
하느님이 이르시기를, 조선으로 갈 조선 사람을 보라.
그를 데려갈 날이 이미 정해져 있었도다.
주님이 작은 소리로 대모에게 속삭였으니,
그 이름 앙리(헨리코), 그 이름 앙리.
아! 슬프도다! 이 날 그를 자신의 날개에 태워 거기까지 데려가는구나!
우리는 그가 죽을 때까지 전해지는 소식밖에 들을 수 없겠구나.
머리를 쉴 돌도 몸을 숨길 곳도 없이,
성 앙리 축일이 다시 돌아올 때 그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를 보고 조선에서는, 지옥이 말하리라,
내가 두려워하는 이는 도리뿐이라고, 그때 하필이면 도리가 오는구나 라고!
아마도 그 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그의 머리를 베리라.
그리고 성 앙리의 축일이 이제 1년에 두 번 돌아오게 되리라.
피에 물든 월계관이 너의 이마를 에워싼 후,
주님이 그 관을 내게 주시기를 청하도록 나의 주보가 되어다오,
너와 나 둘 모두 그 순교의 월계관을 얻음이 내 바라는 행복이라.
성 앙리가 네게 미소 짓거든,
그에게 이 소원을 축제의 꽃다발처럼 바쳐다오.
우선 배를 타고 바다 넘어 마른 발로 조선에 가서
한 마리 새처럼 세상 끝까지 날아오르오.
거기에는 네 노래할 자리가 이미 마련되어 있으니, 복된 이방인이여,
네게는 매일 매일이 축제가 되리라, 나의 친구 앙리여.

이 노래는 예언처럼 되었다. 도리 신부는 1865년 5월 27일 한국에 도착하였고 1866년 3월 7일에 순교하였다. 그리고 1968년 10월 6일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에는 시성되어 성인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또 다른 헨리코 성인이 태어난 것이다. 도리 헨리코 성인의 축일은 9월 20일이다. 그래서 앙리(헨리코) 축일이 이제 1년에 두 번 돌아오게 되었다.
이 노래는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출간한 《순교자들과 시인들(Martyrs et Poètes)》에 수록되어 있다.
원래 책에는 멜로디만 있는데 손골성지에서는 곡에 화음을 붙이고 가능한 대로 가사의 내용을 살려 악보를 만들어 부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