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편지 열여덟 번째
제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 거먹다리 밑에는 거지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감지도 빗지도 않은 장발의 머리, 개집에나 깔아줘야 할 것 같은 옷, 멀리까지 풍기는 고약한 냄새로 인해 제 눈에는 도무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못된 아이였습니다. 친구들과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동냥 깡통을 든 할아버지와 만나면 돌을 던지고 도망치곤 했으니까요(짱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학교 다녀왔습니다.”라며 큰 소리로 인사하며 대문을 열었는데… 세상에, 그 거지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마루에서 상을 펴고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저는 놀란 토끼마냥 냅다 도망 쳤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절였던 거죠. 그리고 동네를 한참 헤매다가 해질녘 어스름에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에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왜 그러셨을까? 그냥 먹을 것을 깡통에 넣어주시면 될 것을… 왜 밥까지 차려 주셨을까?’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는 비위가 심하게 상했습니다. ‘혹시 이 숟가락을 쓴 것은 아닐까? 저 반찬에 손을 댄 것은 아닐까?’
50년은 다 되어가는 일이 되었건만 학교에서 돌아와 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식사 중인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던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엔 놀라자빠질 지경이었데… 지금은 굉장히 죄송하고 창피합니다. 어머니는 식사를 대접했는데 아들은 돌이나 던지고 도망이나 다녔으니 말입니다.
훗날 그 할아버지는 그 다리, 거먹다리 밑의 움막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 제가 어른이 되자 그제야 비로소 그 할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집 양지바른 마루에서 대접받은 한 상 차림, 얼마나 고마웠을까요? 비록 그 집 아들이 당신에게 돌을 던졌어도 다 용서해 주셨겠지요.
아름다운 선행을 물려주신 그날의 어머니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썩 괜찮은 신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칭찬받을 일이 있다면 그건 어머니의 흔적일 겁니다.
겨울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주 약골이었고 손발이 찼습니다. 그래서 기온이 떨어지면 쉬이 동상이 걸리곤 했습니다. 발이 간지러워 쩔쩔매며 할아버지를 찾아가면 제 발을 콩 넣은 자루에 넣어 주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마음의 동상이 더 힘들었습니다. 그 동상은 여름에도 걸렸습니다. 고생과 상처로 마음에 얼음이 박혀서 도대체가 빠져나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동상은 콩자루가 아닌 오직 따뜻한 이와 마주해야 녹았습니다.
날이 춥습니다. 기온이 내려가면 새도 곰도 물고기도 따뜻한 곳을 찾아 움직입니다. 동물만 그럴까요? 사람도 그러합니다. 몸을 기대고 마음을 녹일 벗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시기입니다. 마냥 성탄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오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마음의 온기를 나눠주는 산타가 되는 건 어떠실런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