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편지 스물네번째
얼마 전 새삼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건 꽃이 지면 꽃이 핀다는 겁니다. 모든 꽃이 동시에 피어나지 않고 하나의 꽃이 피고 지면 다음 꽃이 피고 지더라구요. 그로 인해 5월 한달 내내 꽃이 피었습니다. 꽃은 성지를 물들이고 마음을 물들였습니다. 아쉬워 마세요. 이번 달에도 이어 필 꽃이 남았습니다. 당연히 가을까지 이어질 것이구요.
성지의 곳곳에서 생명이 탄생했습니다. 알에서 올챙이들이 깨어났고 꿈틀대던 도룡뇽 새끼들도 알집을 뚫고 나왔습니다. 여전히 개울에서는 올챙이들을 만날 수 있고 무명순교자 묘지로 오르는 길에 있는 샘에는 올챙이들과 도룡뇽 애기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무럭무럭 자라서 넓은 자연으로 오르는 날이 오겠지요.
5월 2일에는 마리아상 축복식이 수지지구장 서북원 베드로 신부님의 주례로 있었습니다. 작업의 시작부터 관심을 갖고 지원했고 친히 성지까지 와서 축복식을 해주신 서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폭설로 망가진 산자락에 작은 동산을 만들고 바로 그 자리에 마리아상을 모시게 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재작년 11월 30일, 설레며 기다리던 첫눈이 대설이 되어 나무의 가지를 찢고 뿌리를 뽑았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길이 뚫리고 주차장을 치우기까지 나흘이나 걸렸습니다. 성지 미사는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구요. 그렇게 폐허가 되었던 곳에 마리아상을 모셨으니 무너진 마음과 무거운 영혼을 이끌고 힘들게 성지에 온 사람들이 회복의 숨을 쉬는 곳이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작가와 고민 후 ‘손골 마리아상’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 성지만의 성상이니 말입니다. 성모상이라고 해도 되지만 굳이 마리아상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만난 어린 처녀 마리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를 만난 것도 혼절할 노릇인데 임신의, 그것도 성령으로 인한 잉태의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고민스럽고 괴로웠겠습니까? 환희와 기쁨이 아니라 파혼과 죽음이 예상되는 그 고통의 순간은 또한 우리가 처하는 시련과 십자가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마리아상을 모시고 며칠 후, 어느 분이 마리아상의 얼굴에 누군가 검댕을 칠하고 갔다고 친절하게 신고?를 하셨습니다. 그분이 검댕이라 여긴 그것은 대리석에 들어있던 문양이었습니다. 차라리 잘 됐다고 여기던 부분입니다. 어린 마리아가 겪었을 상황을 생각하면 그분의 수심이 드러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별개의 분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아니 더 심한 시련에 처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상의 백미는 손입니다. 상황은 절망이었지만 그분의 선택은 순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은 ‘손골 마리아상’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작가도 그 손와 손가락을 조각하는데 온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랍니다. 아무리 처한 현실이 힘들고 괴롭더라도 하느님의 의중을 살펴 그 뜻에 따르는 것이 우리의 선택이어야 하고 그 확실한 모델이 마리아 동산에 계시니 거기에 올라 위로을 얻고 격려를 받으시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성지에 와보면 보시겠지만 잔디밭에 있던 등나무 벤치를 철거해야만 했습니다. 용인시에서 불법가설물로 폐기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에 치운 벤치도 철거의 대상인데 다행히 미리 조치한 셈이었습니다. 막상 치우고 나니 아쉽기는 하지만 잔디밭에 훤해졌습니다. 벤치는 기념관 벽에 임시로 놓았는데 오후에는 그늘이 드는 자리라서 일단 사용 빈도를 두고 본 후 위치를 확정하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멧돌 십자가라 부르는 도리신부님 십자가 현양비는 뒤가 훤히 뚫려 있어서 뒷집이 여과없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단풍나무 두 그루를 현양비 뒤로 옮겨 심었습니다. 나무가 자리를 잡으면 병풍처럼 현양비를 감싸안아 구도적 편안함을 주리라 기대합니다.
마리아동산으로 오르는 계단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옮겨야만 했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성심상도 약 2m가량 이동해야 했구요. 이동에 앞서 성상의 제작을 한 미리내 수도원으로 보내 세척과 도색을 새로 한 후 예수성심성월인 6월 초에는 다시 모실 겁니다. 수사님들이 정성을 다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당과 기념관의 슬리퍼는 오래되어 새것으로 교체했습니다. 보다 쾌적하게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슬리퍼의 숫자입니다. 지난달 가장 많은 순례객이 온 토요일과 주일은 각각 162분과 165분이 미사에 참례하셨습니다. 108석인 성당의 수용 한계를 한참 넘어서서 보조 의자를 놓고 미사를 드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순례객이 많은 미사에는 무릎을 꿇는 시간에 서 있기로 했습니다.
물론 매달 이렇지는 않지만 한창 순례 교우들로 붐비는 이 시기는 수입?이 늘어 성지 재정에 큰 도움이 되기를 하지만 교우들의 영적 휴식을 위한 온전한 환경이 되지 못해 마음이 무겁습니다. 특히 어쩔 수 없는 주차 문제는 잔디밭까지 주차장으로 열어도 해결이 어렵습니다. 일반 성당과 달리 처음 오시는 분도 많은 성지의 특성상 불편을 겪는 일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순례 교우들이 덜 불편하도록 기쁘게 불편을 감내하는 직원과 봉사자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예수성심성월입니다. 사람이 되어 오시고 우리의 몸값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주님의 거룩한 마음을 느끼고 감사하는 시기입니다. 벗을 위해 목숨을 선물한 주님의 사랑으로 삶의 선택과 태도에 영향을 받기를 희망하며 어느 성지라도 다녀오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기온도 오르고 습도도 오르지만 따뜻한 말과 촉촉한 마음으로 이웃을 살맛나게 하는 빛과 소금이 될 것을 다짐하며 6월을 시작합시다.
손골성지에서,
다미아노 Dre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