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편지 열일곱 번째
이번 조 신부의 휴가 때, 함께 테니스를 두어 번 같이 친 제 동창 신부가 있어요. 박 신부라고. 호계동 주임을 했던 지라 조 신부와도 잘 알죠. 조 신부가 신학생 때 본당신부였으니까. 근데 엊그제 꿈에 조 신부를 만났다지 뭐예요. 천당에서 만났다는데, 반가운 마음에 “여기는 먼저 온 네가 잘 알 테니 테니스장 예약 좀 해봐. 한 판 하자.”고 했더니 조 신부가 “여기서는 제가 선배입니다.”라더랍니다. 맞죠. 새로 태어나는 것이니 박 신부도 저도 후배가 되네요. 에발도 씨는 동생이고.
팽성에서 창선이가 잘 나가던 사업을 접고 신부가 되고 싶다고 찾아왔을 때, 그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본당 신부인 저는 저대로 고민이었습니다. 서른이 넘은 나이가 큰 걸림돌이었죠. 그때 의논하려 찾아뵌 분이 김영배 신부님이셨어요. 제가 스승님으로 모시는 그분 말씀이 ‘추천서를 써라!’였습니다. 김 신부님도 수도회에서 수원교구로 넘어오신, 어렵게 사제가 되신 분입니다. 암튼 창선이는 결국 나이 때문에 수원교구가 아니라 한국외방선교회 소속으로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신학생이 되자 당연히 김 신부님께 함께 인사드리러 갔죠. 그러니 김영배 신부님은 할아버지 신부님쯤 되겠네요.
창선이가 선종한 어제, 김 신부님 묘소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그 조 신부가 간다고 말씀드리러. 김 신부님은 50년 동안 사제 생활을 하셨고 조 신부는 비록 7년 했지만 뭐 햇수가 중요하겠어요? 김대건 신부님은 2년도 못 하셨는데… 천주님께서 사제로 부르시고 멕시코 오지에서 귀하게 쓰셨으니 심하게 문전박대는 안 하실 겁니다. 오히려 남은 이들이 걱정이라면 걱정일 뿐이죠. 길게 살아 허물만 쌓이지는 않을런지…
창선이는 우리에게 동생과 아들 신부로 즐겁게 함께하다가 먼저 출발했습니다. 인생을 소풍이라고 했던 시인 천상병은 천주교인이셨더라구요. 그분 말마따나 이 소풍 같은 인생에 한국에서 보낸 지난 4개월은 천주님의 극진한 배려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조 신부는 이미 부름을 듣고 손짓을 보았을 겁니다. 진짜 형이고 진짜 아버지이신 그분의 말씀과 손짓을 말이죠.
좋은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죽음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아요. 죽긴 누가 죽었습니까, 버젓이 하느님 안에 살아 있는데. 우리는 안 보여도 창선이는 보이고 들을 텐데… 좋은 친구이고 돼지엄마였던 창선이 조 신부, 기억 속이 아니라 영원 속에서 살아 함께함을 믿는 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살아계신 하느님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창선이와의 지난 시간들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왠지 앞으로는 창선이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들이 생길 것만 같습니다^♡^
우리 가족들, 슬픔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것을 넘어선 평화, 그분으로 인해 마음이 놓이고 평안해지기를 기도합니다.
“나다. 안심하여라!“
지난 10월 21일 멕시코에서 선교 사제로 활동하다가 휴가차 한국에 왔던 조창선 도밍고 신부가 갑작스럽게 하느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조 신부가 선종한 이튿날 상주인 친형 에발도 씨에게 보낸 내용입니다.
스승님께서 ‘사람은 병으로 죽지 않고 명으로 죽는다.’고 하셨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은 받아들이기에 통증이 너무나 깊습니다. 며칠 전까지 활짝 웃으며 함께 놀았는데 훌쩍 떠나니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요. 그러면서도 시간의 소중함과 사람의 귀중함을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아이는 삶을 배우고 어른은 죽음을 배운다고 했으니 위령성월인 11월이 나의 삶을 밀도있게 만들어 주기를 희망합니다.
손골에서, 다미아노 Dre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