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편지 스물한 번째


손골편지 스물한 번째

 

처음으로 본당 주임을 맡아 갔을 때,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화는커녕 나쁜 말, 싫은 소리하는 걸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성실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거의 이십 년이 더 지난 지금도 그를 기억합니다.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던데 엄청 순박한 시골 청년인 그의 이름은 ‘순남’입니다. 그를 부를 때는 이름 때문이라도 늘 다정했습니다.

이름뿐이 아니라 계절로서의 순남도 너무 좋습니다. 성지의 시간은 늘 성수기와 비수기로 나누는데 성수기는 봄, 가을이고 비수기는 여름입니다. 그러면 겨울은? 변하기입니다. 겨울은 빨리 가도 천천히 가도 아깝지 않습니다.

한번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일절에 왜 만세들을 부르셨을까? 보통 만세란 좋은 날 하는 건데…’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만세를 한 이유가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립을 선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세 부른 날로만 기억한 저의 무지가, 무식이 창피했습니다.

비록 독립을 성취하기까지 35년이 더 필요했지만 독립을 선언한 1919년 3월1일은 광복절만큼이나 의미가 깊었습니다. 그리고 독립의 선포를 위해 잠든 날이 바로 꽃 피는 봄의 첫날이었던 겁니다. 저는 삼일절의 의미를 너무나 늦게 알아 부끄러웠습니다.

날이 많이 풀렸습니다. 성지의 개울물 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온이 올라 15도가 10일 이상 지속되면 나무가 뿌리에 지시합니다. 물을 끌어올리라고. 그리고는 빛을 향해 이파리를 진동, 광합성합니다. 그러면 식물의 엽록체가 빛에너지를 이용하여 공기 중에서 흡입한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끌어올린 물을 합성하여 산소와 탄수화물을 배출하고 변환시킵니다. 광합성입니다. 기가 막히죠. 해로운 탄소를 빛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산소와 나무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나무만이 아니라 사람도 햇빛이 필요합니다. 하늘이 열려 날씨가 맑아지면 막 밖으로 나가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진정 필요한 빛은 햇빛이 아닙니다. 그 햇빛마저도 창조하신 참빛이신 주님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 빛의 주님을 붙잡는 눈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눈은 떠지지 않으면 보지를 못합니다. 눈은 장님이었어가 영혼의 시력을 얻은 그는 그 밝아짐에서 증거자로 바뀌었습니다.

봄입니다. 마음을 열고 영혼의 팔을 벌려 빛의 주님을 맞이해야 할 때입니다. 나무가 광합성을 통해 독한 탄소를 산소와 에너지로 바꾸듯 사람은 실패를 기회로, 걱정을 기쁨으로, 우울을 의욕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전환해 주는 신앙의 광합성이 필요합니다. 이제 기지개를 켜고 빛의 기도를 통한 광합성을 하러 성지순례를 출발해 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게다가 한국인에게 삼일절이 소중하듯 손골성지도 3월은 중요합니다. 도리 신부님과 오메트르 신부님의 순교일이 3월 7일과 30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교일이 되면 순교 기념미사를 드립니다. 춘천교구 순교자현양대회도 3월 7일에 열리기도 했습니다.

작년 수지지구의 신부님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 수지지구 순교자현양대회를 두 분의 순교일이 들어있는 3월에 거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2026년 올해는 3월 14일에 제대리구장 문희종 안제자 주교님을 모시고 엄격합니다.

장소는 기존의 성역인 성당입니다. 손골성지가 많은 인원을 감당하기엔 어려움이 있어서입니다. 순서는 10시 순교자호칭기도, 10시30분 순교자현양미사, 12시 점심식사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시는 모든 분들에게 도시락을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보좌신부님도 노숙이지 말 주교님도 신부님도 수도님도 모든 교우님들 같이 나누는 의미에서 선택했습니다.

수지지구 신자뿐만 아니라 손골성지를 아끼는 모든 교우들이 모여 두 성인의 순교를 기념하고 뜻깊은 자리가 되기를 희망하며 후원자님들의 두 손 모으고 기도해 봅니다. 모든 순례자님들이 은총의 사순시기를 잘 보내므로 기쁨 부활을 맞이하시도록 성지에서 기도드리겠습니다.

 

손골성지에서, 다미아노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