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편지 네 번째


손골편지 네 번째
 
찬미예수님, 한 달 동안 밝고 기쁘게 지내셨는지요?
사실 편지를 쓰는 지금은 추석 전날입니다. 내일 성지에서 미사 드리고 고향에 내려갈 생각을 하니 좀 설레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기온이 30도를 넘는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아 그저 의아하기만 합니다. 더 이상 매미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말이죠. 게다가 낚시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강의 수온이 작년 이맘 때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걱정이 됩니다. 정말이지 자연을 보호해야 할 확실한 이유가 이제는 ‘두려움’입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백일을 살면 일단 큰 고비를 넘긴다고 여겨 백일잔치를 해주곤 했습니다. 군대에서도 자대 배치를 받고 백일이 지나면 백일휴가를 보내주었습니다. 어느새 제가 손골성지에 온지도 백 일이 되었습니다.
왜 좌충우돌이 없었겠습니까마는 어찌저찌 큰 문제없이 첫 단추를 꿴 듯합니다. 주어진 임기 동안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성지에 오시는 분들이 편안하게 순례를 할 수 있도록 매일매일 잘 준비하도록 애쓰겠습니다.
 
아, 그리고 무명순교자묘소로 올라가려면 돌로 된 가파른 계단을 이용하거나 완만하지만 굽은 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이번에 그 야자매트를 깔았던 길을 보수하였습니다. 저도 이번에 알았는데 야자매트는 수명이 대략 5년이라더라구요. 그래서 낡아서 미끄러워진 매트를 걷어내고 새로 돌길을 내었습니다.
모기에 물리고 땀을 흘려가며 정성을 다한 루카 형제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잔디밭의 잡초를 뽑으러 오시는 예쁜 자매님과 잔디와 풀을 깎으러 멀리 미리내에서 달려와주는 멋진 형제님들에게도 고맙습니다.
 
요즘 논의 색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봄의 개나리보다 예쁘면 예뻤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그 벼, 벼는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 농사만 그런가요? 세상일이 모두 다 정성을 기울인 만큼 자라고 결실을 맺는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그런가 하면 벼와는 다르게 풀은 며칠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라버립니다.
그놈의 풀이라는 게 그래요. 연할 때 뽑아야 수월하지, 뽑을 때를 놓치고 자를 때를 놓치면 제거하기가 힘들어지더라구요.
그러니 그 잡초를 보며 맑고 밝은 영혼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매일 애를 써야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루라도 선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이 스스로 일어난다는 구절처럼 말이죠. 너무나 쉽게 뿌리를 내리고 둥지를 트는 악습을 조심하고, 선으로써 악을 굴복하라는 성경말씀을 새겨 선습을 가꾸도록 힘써야 함을 생각합니다.
 
과일은 맛이 들었고 들은 풍요로워졌고 산은 아름다워졌습니다. 나도 익어가는 가을이기를 바라며 묵주를 들고 밖으로 나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