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편지 다섯 번째


손골편지 다섯 번째
 
지난 묵주기도 성월은 잘 보내셨어요? 위령성월, 그러니까 연옥영혹들을 위해 기도하는 달입니다. 세상에 가장 확실한 건 나는 죽는다는 거예요. 근데 그게 언제인줄을 몰라요. 그래서 노후대책, 노후대책 말을 하지만 사후대책도 필요한 것이 우리입니다.
 
제작년인가, 페루의 선교사 신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양로원을 짓고 있는데 좀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당연히 돕는다고 했죠. 그런데 저 말고도 다른 분도 돕기로 했답니다. 정말 잘 됐지요. 맞들면 좋은 건 백지장만이 아니잖아요.
며칠 후 해외송금 문제로 그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 번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몰랐지만 선행으로 연결되었으니 반가운 통화였구요. 그날은 주일이었고 미사 간다는 말로 통화를 마쳤고 돈도 페루로 부쳤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일주일 후 저는 그분의 빈소를 가야만했어요. 교통사고도 아닌데 갑자기 떠나셨대요. 선행을 같이 한번 한 인연으로 찾은 곳에서 처음으로 그분의 얼굴을 영정사진으로 보았는데, 사진 속 웃고 있는 그분은 그냥 착한 아줌마셨어요.
 
영정 앞에서 기도하고 상주들과 절을 하고 나오는데 남편이 저를 잡더라구요. 부인이 임종 전에 내가 만일 잘못되면 찾아올 신부님이 있을 거라고 했다면서… 그래서 제가 오기를 기다렸대요. 눈물이 나더라구요. 이 건으로 끝날 보통 인연은 아니겠구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누가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 자기 빈소를 찾아 올 신부를 예견하겠어요?
사실 그분이 보낸 그 돈, 쓰일 곳이 단순한 양로원이 아니예요. 페루 산골의 노인들, 가난 때문에 고통스럽고 쓸쓸한 죽음을 맞아야 하는 그분들이 죽음을 준비할 거처를 짓는 겁니다.
그분은 본인의 운명을 알았을까요? 아니면 하느님을 그렇게 그의 죽음을 준비시킨 걸까요? 우리는 알 수 없고 알 길도 없어요.
 
삶이 두려운 사람은 죽음을 선택해요. 삶이 두려운 건 힘들어서가 아니예요. 저도 죽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그랬어요. 그래서 알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야 할 이유를 알고만 있다면 살아진다는 것을. 그러니 ‘왜 사냐’고 누군가 물으면 분명히, 주저없이 말할 수 있는 ‘대답’이 있어야만 해요.
죽음과는 한번 만나겠지만 ‘죽음을 앞둔 나’와는 되도록 자주 만나야 해요. 그의 대답이 나에게 사는 이유와 있어야 할 자리를, 그리고 살아야 할 자세를 알려주니까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여유까지 부리다가는 갑작스레 닥쳐오는 죽음과 맞닥뜨려야 할 겁니다. 그러니 죽어도 후회와 미련이 없도록 정리된 삶을 살아야 해요.
 
생명은 살라는 하느님의 명이니 우리는 그분의 명령대로, 섭리대로 살아내야 합니다. 그런 삶이 내가 죽음을 대비하는,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유일한 길임을 또한 믿구요. 죽은 물고기만이 물살을 따라 내려간다고 했어요. 하느님을 거스르지 않고 순명으로 살아갈 힘을 은총으로 구하며 위령성월을 의미 있게 보내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이재웅 다미아노 신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