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편지 여섯 번째
눈이 왔습니다. 첫눈치고는 참 많이도 왔습니다. 아니, 와도와도 너무 와버렸습니다. 화요일부터 내린 눈은 급기야 성지로 올라오는 마을길을 막아버렸고 그 길은 목요일 오후나 돼서야 열렸습니다. 그래서 성지 미사는 수요일도, 목요일에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눈은 목요일 오전에 그쳤고 그제야 눈을 치우기 시작했지만 사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치웠지만 눈이 무릎까지 빠져서 간신히 사람 다니는 길만 냈습니다. 그나마 동네 분들이 도와주셨기에 망정이지 그 길마저도 못 낼 뻔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차장이었습니다. 적설량이 많은데다 습설이라 너무 무거웠습니다. 도저히 주차장을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금요일 미사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포크레인을 섭외했지만 토요일에나 올 수 있다 해서 토요일 미사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에도 주차장이 좁아서 그 난리였는데… 어쩔 수 없이 잔디밭에도 차를 댔는데… 이번에는 눈 때문에 아예 주차를 못했으니 사람이 많이 와도 문제, 눈이 많이 와도 문제였습니다. 내년에는 기필코 손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나무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있는 성지 뒷산에 가보니 굵은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가지가 찢긴 나무들은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한 나무는 간신히 예수님 상을 비껴 넘어졌습니다. 눈이야 포크레인으로 치울 수 있지만 넘어진 나무는 일으켜 세울 수가 없습니다.
눈송이 하나의 무게를 잴 수 있을까요? 아니, 그걸 잴 수 있는 저울이 있기는 할까요? 저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소나무 가지가 ‘쩌억’ 찢겨져 나가던 소리를 기억합니다. 그 비명 소리에 온 산이 울렸습니다. 무게조차 잴 수 없는 눈송이들인데 그 눈이 쌓이니 가지가 찢겨나가고 나무가 통째로 쓰러졌습니다. 눈, 무섭더라구요. 근데 그거 아세요? 전지한 나무들은 멀쩡하다는 걸… 가지치기의 중요성을 새삼 알겠더라구요.
한국에는 태백산맥이 있다면 미국에는 록키산맥이 있습니다. 그 록키산맥에 거대한 나무 한그루가 우뚝 서 있었답니다. 그 나무는 수많은 눈사태와 폭풍우를 견디어냈고 무려 14번이나 벼락을 맞았어도 쓰러지지 않았기에 매우 유명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위용을 자랑하는 나무를 보면서 감탄하고 영감을 얻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 나무는 그만, 와지끈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록키산맥의 산신령 같던 나무가 말이죠.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나무가 쓰러진 이유를 발견하고는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숱한 눈사태와 폭풍우를 견디고 14번의 벼락을 맞아도 끄떡없던 나무가 쓰러진 원인은, 허무하게도 딱정벌레 때문이었습니다. 딱정벌레들이 나무속을 갉아먹었기 때문이랍니다. 손가락으로 퉁기기만 해도 저리로 나자빠지는 하찮은 딱정벌레인데 말이죠.
명의 중의 명의도 못 고치는 병이 있다죠? 바로 어제병과 내일병. 이미 지나간 어제에 붙잡혀 살고,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인데 미리 근심걱정하며 사는 병 말입니다.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진다면 걱정할 일이 없겠네.’ 어느 식당에 붙어있던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걱정도 팔자’라는 말도 있죠. 정확히는 늘 걱정만 하는 사람에게, 그래서 걱정이 습관이 된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걱정은 본인 것만 하지 않아요. 오지랖도 넓어서 남 걱정까지 도맡아 해줍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구해도 근심걱정에 빠진 사람은 못 구하니까요.
그런데, 근심 걱정에 줄곧 붙는 말 있습니다. 바로 ‘사소한’입니다. 사소한 근심, 사소한 걱정. 하지만 그 사소함이 쌓이고 누적되면 눈덩이처럼 커지고 웃음을 몰아내며 피를 말리고 결국에는 쓰러뜨립니다.
혹시 나는, 록키산맥의 그 나무처럼 인생의 폭풍우와 눈사태와 벼락은 이겨내면서도 근심이라는 벌레에 갉아 먹히며 올해를 살아오지는 않았는지를 살펴봐야겠습니다. 또한 우리들 곁으로 오시는 예수님께 걱정을 내어드리고 밝고 힘찬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올해의 마지막 달을 제대로 마무리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