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편지 여덟번째
찬미예수님, 설 명절은 잘 쇠셨는지요? 새해 주님 축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동안 손골성지에서는 해가 오후 세시반이면 서쪽 산을 넘어갔는데 이제는 조금씩 해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곧 주차장에 낀 얼음과 산 속의 눈들이 녹아내리리라 여깁니다.
원래 물난리는 여름에나 겪는 것인 줄 알았는데 겨울의 물난리도 난리는 난리더라고요. 물이 얼어서 며칠 동안 성지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사제관 화장실을 개방하기도 했으니 말 다했죠. 불편을 겪으셨어야 할 교우님들께 송구합니다. 이런 상황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주차장은 주차장대로 눈이 녹지를 않아 미끄러운 상태로 겨울을 나야 해서 오시는 교우님들의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겨울의 손골성지는 이렇듯 불편함이 있는데도 꾸준히 순례를 오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고, 그분들께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2025년 올해는 희년이라서 손골성지를 방문하는 교우들이 늘었습니다. 희년 동안 손골성지를 방문하고 깨끗한 영혼의 상태에서 영성체를 하고 교황님의 지향대로 기도드리면 전대사의 은총이 주어집니다. 일 년 동안의 특혜이니 어느 성지든지 자주 순례하십시오.
2월은 주님봉헌축일이 있는 달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께서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셨듯이 우리도 가정과 자녀들과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봉헌은 기부와는 사뭇 다른 의미입니다. 자선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봉헌은 하느님께 바치는 것인데 하느님께 기부를 한다거나 자선을 베푼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니까요.
인류의 첫 번째 봉헌은 카인이 바친 짐승과 아벨이 바친 곡식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기의 중요한 수확을 바쳤습니다. 이후로도 피조물 인간은 맏배, 그러니까 첫 아이나 가축의 첫 새끼, 한해의 첫 소출을 바쳤습니다.
지금이야 우리는 미사 시간에 봉헌금을 바치고 교무금을 바칩니다만 교무금으로 곡식을 바치던 때가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닙니다. 지금도 다른 나라에서는 미사 시간에 쌀을 봉헌하기도 합니다.
십여 년 전 잠비아를 방문해서 주일미사를 드릴 때의 일입니다. 헌금 시간에 아이들은 성당에 오는 길에 딴 것으로 짐작되는 망고나 다른 과일들을 들고 나왔습니다.
산 닭의 다리를 잡아 들고 제단으로 나오는 어른들을 보고 저는 놀랐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걸렸습니다. 물론 닭은 죽는다고 발버둥을 쳤지만요. 닭들은 사제의 손을 거쳐 복사에게 인계되었고 복사들은 닭을 들고 이내 제의방 뒤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닭들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맨 뒤에 자랑스레 뭔가를 머리에 이고 들어오는 자매님이 있었는데 정말로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매님이 봉헌한 것은 환타 한 박스였습니다.
봉헌하는 예물은 다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가 흥겹고 즐거웠습니다. 아쉽거나 아까워하는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봉헌이라고 해서 돈이나 쌀이나 과일만이 그 대상이어서는 안 되겠지요. 어찌 좋고 귀한 것만 봉헌의 대상이겠습니까? 봉헌물이 뇌물이 아닌 이상 상처나 슬픔, 단점이나 잘못도 봉헌의 대상일 수 있다고 여깁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다 내어맡긴다는 것은 분명 온전히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으로 하느님께 내 인생을 봉헌하며 낙천의 삶을 살 것을 다짐하는 2월이기를 희망합니다.
손골에서 다미아노 신부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