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代) 순교자
3대(代) 순교자
세 세대가 함께 증언한 신앙, 이씨 3대 순교자
이 요한과 그의 아들 이 베드로, 손자 이 프란치스코는 한 가문 안에서 신앙을 이어받아 끝까지 증언한 3대 순교자입니다.
그들의 삶은 신앙이 세대를 넘어 전해지고 완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국 교회의 특별한 증언입니다.

한덕운 토마스는 박해 속에서도 순교자들을 돌본
영성의 모범으로 전해집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시신을 거두는 활동을 이어가다 체포되어,
남한산성 동문 밖에서 참수로 순교하였습니다.

박해 속에서 이어진 신앙의 가문
손골에는 이 요한과 그의 아들 이 베드로, 그리고 손자 이 프란치스코로 이어지는 3대 순교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충청도 당진 면천(沔川) 출신으로, 조선 후기 박해가 일어나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천안 성거산으로, 다시 전라도 지역으로 옮겨 다니며 신앙을 이어갔고, 이후 손골에 와서 교우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손골은 이들에게 잠시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박해 속에서도 공동체와 함께 신앙을 지키는 자리였습니다.
남성골에서의 체포 위기
병인박해(1866) 초기, 도리 신부의 권유로 이들은 손골을 떠나 용인 남성골로 내려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포졸에게 붙잡히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포졸은 “3대를 함께 잡아갈 수는 없으니 한 사람이라도 가자”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이 요한과 그의 아들, 손자는 각각 자신이 가겠다고 나섰다고 전해집니다. 세 사람이 서로를 대신해 먼저 잡혀가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본 포졸은 결국 이들을 모두 풀어주었습니다.
이 일화는 이 가문이 지녔던 깊은 신앙과 결단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쇠재에서의 삶과 최후의 체포
남성골에서 풀려난 뒤, 이들은 충청도 아산 일북면 쇠재로 옮겨가 다시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나 박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1870년, 서울 좌포청(左捕廳) 포교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혹독한 심문과 형벌 속에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3대가 함께한 순교
1871년 3월 19일(음력), 이 요한과 이 베드로, 이 프란치스코는 서울 좌포청에서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한 가문에서 세 세대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신앙을 증언한 사건은 한국 교회사 안에서도 매우 특별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앙은 한 세대에서 멈추지 않고, 가문 안에서 이어졌으며, 마침내 순교로 완성되었습니다.
손골이 기억하는 순교
손골은 이 3대 순교자가 머물며 신앙을 지켜낸 장소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순교의 결과를 기념하는 공간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이어진 신앙의 삶과 결단을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손골은 신앙이 가정 안에서 어떻게 전해지고, 어떻게 증언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성지입니다.
손골성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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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골마리아상’ 축복식 안내
손골성지 마리아 동산에 새롭게 마련된마리아상 축복식이 아래와 같이 거행됩니다.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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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 손골성지 순례 안내
수원교구에서 진행하는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 순례가 손골성지에서 아래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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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수지지구 순교자 현양대회 안내
수지지구 순교자 현양대회가 순교 160주년을 기념하여 아래와 같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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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세대가 함께 증언한 신앙,
이씨 3대 순교자
이 요한과 그의 아들 이 베드로, 손자 이 프란치스코는
한 가문 안에서 신앙을 이어받아 끝까지 증언한
3대 순교자입니다.
그들의 삶은 신앙이 세대를 넘어 전해지고
완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국 교회의 특별한 증언입니다.

한덕운 토마스는 박해 속에서도 순교자들을 돌본
영성의 모범으로 전해집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시신을 거두는 활동을 이어가다 체포되어,
남한산성 동문 밖에서 참수로 순교하였습니다.

박해 속에서 이어진 신앙의 가문
손골에는 이 요한과 그의 아들 이 베드로, 그리고 손자 이 프란치스코로 이어지는 3대 순교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충청도 당진 면천(沔川) 출신으로, 조선 후기 박해가 일어나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천안 성거산으로, 다시 전라도 지역으로 옮겨 다니며 신앙을 이어갔고, 이후 손골에 와서 교우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손골은 이들에게 잠시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박해 속에서도 공동체와 함께 신앙을 지키는 자리였습니다.
남성골에서의 체포 위기
병인박해(1866) 초기, 도리 신부의 권유로 이들은 손골을 떠나 용인 남성골로 내려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포졸에게 붙잡히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포졸은 “3대를 함께 잡아갈 수는 없으니 한 사람이라도 가자”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이 요한과 그의 아들, 손자는 각각 자신이 가겠다고 나섰다고 전해집니다. 세 사람이 서로를 대신해 먼저 잡혀가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본 포졸은 결국 이들을 모두 풀어주었습니다.
이 일화는 이 가문이 지녔던 깊은 신앙과 결단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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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서울 좌포청(左捕廳) 포교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혹독한 심문과 형벌 속에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3대가 함께한 순교
1871년 3월 19일(음력), 이 요한과 이 베드로, 이 프란치스코는 서울 좌포청에서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한 가문에서 세 세대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신앙을 증언한 사건은 한국 교회사 안에서도 매우 특별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앙은 한 세대에서 멈추지 않고, 가문 안에서 이어졌으며, 마침내 순교로 완성되었습니다.
손골이 기억하는 순교
손골은 이 3대 순교자가 머물며 신앙을 지켜낸 장소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순교의 결과를 기념하는 공간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이어진 신앙의 삶과 결단을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손골은 신앙이 가정 안에서 어떻게 전해지고,
어떻게 증언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성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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