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代) 순교자

세 세대가 함께 증언한 신앙, 이씨 3대 순교자


대성당 스테인드 글라스 12번

박해 속에서 이어진 신앙의 가문

손골에는 이 요한과 그의 아들 이 베드로, 그리고 손자 이 프란치스코로 이어지는 3대 순교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충청도 당진 면천(沔川) 출신으로, 조선 후기 박해가 일어나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천안 성거산으로, 다시 전라도 지역으로 옮겨 다니며 신앙을 이어갔고, 이후 손골에 와서 교우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손골은 이들에게 잠시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박해 속에서도 공동체와 함께 신앙을 지키는 자리였습니다.


남성골에서의 체포 위기

병인박해(1866) 초기, 도리 신부의 권유로 이들은 손골을 떠나 용인 남성골로 내려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포졸에게 붙잡히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포졸은 “3대를 함께 잡아갈 수는 없으니 한 사람이라도 가자”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이 요한과 그의 아들, 손자는 각각 자신이 가겠다고 나섰다고 전해집니다. 세 사람이 서로를 대신해 먼저 잡혀가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본 포졸은 결국 이들을 모두 풀어주었습니다.
이 일화는 이 가문이 지녔던 깊은 신앙과 결단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쇠재에서의 삶과 최후의 체포

남성골에서 풀려난 뒤, 이들은 충청도 아산 일북면 쇠재로 옮겨가 다시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나 박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1870년, 서울 좌포청(左捕廳) 포교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혹독한 심문과 형벌 속에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3대가 함께한 순교

1871년 3월 19일(음력), 이 요한과 이 베드로, 이 프란치스코는 서울 좌포청에서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한 가문에서 세 세대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신앙을 증언한 사건은 한국 교회사 안에서도 매우 특별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앙은 한 세대에서 멈추지 않고, 가문 안에서 이어졌으며, 마침내 순교로 완성되었습니다.

손골이 기억하는 순교

세 세대가 함께 증언한 신앙,
이씨 3대 순교자

대성당 스테인드 글라스 12번

박해 속에서 이어진 신앙의 가문

손골에는 이 요한과 그의 아들 이 베드로, 그리고 손자 이 프란치스코로 이어지는 3대 순교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충청도 당진 면천(沔川) 출신으로, 조선 후기 박해가 일어나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천안 성거산으로, 다시 전라도 지역으로 옮겨 다니며 신앙을 이어갔고, 이후 손골에 와서 교우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손골은 이들에게 잠시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박해 속에서도 공동체와 함께 신앙을 지키는 자리였습니다.


남성골에서의 체포 위기

병인박해(1866) 초기, 도리 신부의 권유로 이들은 손골을 떠나 용인 남성골로 내려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포졸에게 붙잡히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포졸은 “3대를 함께 잡아갈 수는 없으니 한 사람이라도 가자”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이 요한과 그의 아들, 손자는 각각 자신이 가겠다고 나섰다고 전해집니다. 세 사람이 서로를 대신해 먼저 잡혀가겠다고 나서는 모습을 본 포졸은 결국 이들을 모두 풀어주었습니다.
이 일화는 이 가문이 지녔던 깊은 신앙과 결단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쇠재에서의 삶과 최후의 체포

남성골에서 풀려난 뒤, 이들은 충청도 아산 일북면 쇠재로 옮겨가 다시 생활하였습니다. 그러나 박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1870년, 서울 좌포청(左捕廳) 포교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혹독한 심문과 형벌 속에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3대가 함께한 순교

1871년 3월 19일(음력), 이 요한과 이 베드로, 이 프란치스코는 서울 좌포청에서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한 가문에서 세 세대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신앙을 증언한 사건은 한국 교회사 안에서도 매우 특별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앙은 한 세대에서 멈추지 않고, 가문 안에서 이어졌으며, 마침내 순교로 완성되었습니다.

손골이 기억하는 순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