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편지 열다섯 번째


손골편지 열다섯 번째
 
멕시코에서 선교사로 살고 있는 조 신부가 한국으로 휴가를 나왔습니다. 조 도밍고 신부는 제가 벌말성당에 있을 때 신학교 추천서를 써 준 인연으로 휴가 때면 제가 있는 곳으로 쉬러 오곤 했습니다.
그가 현재 사목하고 있는 성당은 깜페체 교구의 로스 앙헬레스 성당인데 교구청에서 차로 다섯 시간은 가야 하는 외진 곳입니다. 서울에서 부산 거리 정도는 아니지만 길이 워낙 험해서 오래 걸립니다.
성당의 관할 구역은 매우 넓어서 공소가 24개나 됩니다. 그래서 주일의 경우 성당 미사를 마치면 공소 미사를 다니는데 주일 하루 동안 다녀야 하는 공소가 적게는 8군데, 많게는 13군데입니다. 주일에 못 간 공소는 평일에 다녀야 하고요. 언젠가는 미사를 드리기 위해 사흘 동안 24개 공소를 모두 방문한 적도 있답니다. 한국에서 이런 식으로 살면, 그리 할 신부도 없지만 신자들 모두가 뜯어말릴 겁니다.
한번은 공소에 들렀는데 의사소통이 잘못되어 아무도 신부를 기다리고 있지 않더랍니다. 근데 그게 너무 고맙더랍니다. 한 시간은 쉴 수 있어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가 막혔습니다. 조 신부도 적은 나이가 아닌데 저러다 쓰러져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보호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익숙치 않은 언어에서 오는 불편함, 극복하기 어려운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갈등, 한국 음식을 먹지 못하는 또 다른 허기짐, 아무리 신부여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외로움과 싸워야만 하는 그의 처지가 눈에 선했습니다. 국경지대에 살기에 수시로 마약 운반이 이뤄지기에 신변의 위협도 늘 도사리고 있을 터였습니다. 저도 군생활을 해봤기에 총을 다뤄봤기에 누군가 총부리를 나에게 겨누는 일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실제로 현지에서 마약에 대한 문제성을 지적하던 사제가 미사 집전 후 무려 200발의 총알을 맞았다고 했습니다. 이미 숨이 끊어졌는데도 계속 쐈다는 거죠.
그렇게 외롭고 불편하고 위험한 곳이지만 국적을 불문하고 어떤 신부인가는 그곳에서 미사를 드리고 성사를 집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자들이 신자로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어떤 사제들은 한국의 익숙한 삶을 포기하고 낯선 곳으로 떠납니다. 고생투성이일 줄 알면서도 말입니다. 고향을 떠나 주님께서 가리키는 곳으로 떠난 아브라함처럼 말이죠.
 
150여 년 전 이 땅에 오신 도리 신부님, 오메트르 신부님도 그러셨으리라 여깁니다. 프랑스의 삶을 포기하고 낯선 조선으로 떠나실 때는 불편을 감수하신 것이 아니라 죽기를 각오하고, 아니 죽으러 오셨을 겁니다.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요한11,16)라고 외친 토마 사도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조선의 교우들이지만 이 땅에 오기 전부터 교우들을 사랑한 선교 사제 덕분에 한국 가톨릭은 활짝 꽃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에는 박해나 사제의 부족없이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구요. 두 분 신부님을 비롯한 우리 땅에 오신 많은 선교 사제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조 도밍고 신부도 멕시코에서 그 빚을 갚고 있는 거라 여깁니다.
순교자 성월입니다. 지금도 죽기를 각오하고 해돋이에서 해넘이까지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선교 사제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특히 도밍고 신부가 의지와 건강을 잃지 말고 굳건히 살다가 다음 휴가 때 우리 성지에서 다시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아, 그리고 이달 23일은 이곳을 일군 윤민구 도미니코 신부님의 금경축 미사가 오후 2시에 손골성지에서 있습니다. 신부님을 감사히 기억하는 분들의 많은 참석을 청합니다.
 
손골성지에서 다미아노 신부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