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편지 일곱번째
평택대리구청에서 사목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외국인 노동자 센터를 자주 놀러갔는데 그곳의 책임자가 방글라데시에서 온 세바스찬 신부였습니다. 하루는 그가 자기 고향에 새로운 교구가 설립되었는데 소신학교가 없어 곤란해 한다고 넋두리를 했습니다. 형제 신부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칠 수 없고 더구나 사제를 양성하는 일이어서 저도 소신학교 설립에 한몫 돕고 싶다고 했습니다.
황송하게도 방글라데시의 현지 주교님께서는 상황을 소개하고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소신학교는 중고등학교 과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졌습니다. 소신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대신학교, 그러니까 대학와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면 사제가 됩니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대신학교는 수도 다타Dhaka에 하나만 있고 소신학교는 교구마다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 설립된 실렛교구는 소신학교가 없어서 학생들을 다른 소신학교에 위탁교육 보내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의 차이, 텃세, 향수를 극복하는 것은 어린 학생들에게는 힘든 일이라서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주교님은 본인은 월셋집에 살고 있지만 소신학교는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씀셨습니다.
저는 윗분께 상황을 보고하고 일을 추진하고 싶다고 청을 드렸습니다. 승인은 바로 떨어졌으나 책정된 예산은 1원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현지를 답사하고 오라고 비행기표는 사주셨습니다.
소신학교가 필요한 실렛Shylet교구는 수도에서 버스를 타고 여덟 시간은 가야하는 곳입니다. 실렛교구청에 도착해서 주교님과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분의 눈 속에서 스치는 실망을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도움이 되겠다고 온 신부가 젊으니 큰 기대를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셨겠지요.
주교님은 실망하셨지만 저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주교님의 융성한 환대를 통해 한국 신부에 대한 기대의 정도를 알 수 있었으니까요. 주교님은 소신학교를 전적으로 책임질 신부가 왔다고 기대하셨으나 저의 목표는 건축의 10% 정도를 맡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주교님은 저에게 소신학교 부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안내하는 사람만 붙여주시면 되는데 굳이 두 시간 떨어진 부지까지 함께 다녀오셨습니다. 주교님의 귀빈대접에 황송해서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습니다.
숙소인 카딤Khadim성당으로 돌아와서는 한숨만 나왔습니다. 너무 답답해서 성당의 헨리 신부님께 긴급면담을 청했습니다. 돕고는 싶으나, 능력은 없고 기대는 한 몸에 받고 있는 저의 처지를 털어놓았습니다.
“톰과 제리를 봐.” 잘못 들은 줄로 알았습니다. 기껏 속마음을 얘기했는데 겨우 만화영화나 보라니 말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헨리 신부님이 그 이유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내가 자네만큼 젊을 때, 어느 시골 본당의 사제였다네. 하루는 돈도, 먹을 것도 딱 떨어졌지 뭔가. 내 유일한 낙이 ‘톰과 제리’를 보는 걸세. 배고픔도 달랠 겸 그걸 봤지. 한참을 깔깔대고 웃는데, 누군가 사제관을 두드렸어. 낯선 사람인데 성당을 열어 달라더군, 기도하고 싶다고. 문을 따주고서는 ‘톰과 제리’를 계속 봤지. 그 사람이 고맙다며 봉투를 하나 놓고 가더군. 그런데 그 안에 한 달은 먹고살 수 있는 돈이 있지 뭔가. 그러니 자네도 어려움이 닥치면, ‘톰과 제리’를 보게나. 나는 요즘도 매일매일 빼놓지 않고 본다네. 하하하하.”
명의名醫가 내린 형편없는 처방전이었습니다. 다시 눈물을 훔쳐가며 한참을 함께 웃었습니다. 그깟 만화가 꼬인 실타래의 한 올이라도 풀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머리 감싼 고민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이라면 저절로 풀려나갈 것이니 차라리 ‘톰과 제리’나 보면서 신나게 웃으라는 것이 처방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후원이 줄을 이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돈이 모이는 그래프를 그리기까지 했습니다. ‘톰과 제리’는 시시해서 한 번밖에 안 봤는데 말입니다. 당시에 일어난 그 일들, 그 신비스런 감동을 설명할 길은 없습니다.
동방박사는 별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별은 사람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상징입니다. 우리에게 별이란 하느님의 개입으로 이뤄진, 신비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세상 안에는, 역사 안에는 그런 일들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올해도 우리의 삶 안에 들어오시어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빛나는 일들을 벌이실 겁니다. 틀림없어요. 생각만 해도 신이 나지 않습니까?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즐거운 일이든 괴로운 일이든 그 안에서 별의 단서를 찾아갈 것을 다짐하며 기쁘게 새해를 출발합시다.
다미아노 신부 Dre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