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편지 첫 번째


찬미예수님
 
지난 6월 18일, 손골성지 전담으로 발령받은 이재웅 다미아노 신부입니다.
우선 지난 5년 동안 성지를 가꾸어 온 이건희 안드레아 신부님의 노고에 고맙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지를 일구신 윤민구 도미니코 신부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먼 나라 프랑스에서 이곳으로 죽으러 오셨고 생명을 바친 성 도리 신부님과 성 오메트르 신부님의 숨과 얼이 담긴 이곳에 살게 되어 기쁩니다. 그러면서도 그분들의 순교정신을 오늘의 내가 지하수처럼 끌어올려 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고 걱정도 됩니다. 그러나 지금껏 성지를 위해 후원하고 봉사하신 여러분들의 기도를 생각하면 희망과 용기가 생겨납니다.
 
성지의 아침은 아주 평화롭습니다. 동녘으로부터 여명이 밝아져 눈이 떠지면 일어나 창문부터 엽니다. 들려오는 졸졸졸 물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는 그동안 알람과 자명종에 익숙했던 제 귀를 다독여줍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내려가 성당 문을 열고 기도를 바칩니다. 아침에 성당 문을 여는 것이 저의 역할이었던 신학생 때로 돌아간 듯합니다. ‘어느 신부든 신학생 때처럼 살면 꽤 괜찮은 신부가 된다’고 하신 마더 데레사의 말씀이 떠올라 씨익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그리 성실한 편이 못 되거든요.
기도를 마치고 성지 마당으로 내겨가면 고양이 친구들이 반기네요. 얼마 전 새끼가 생긴 ‘순이’가 제일 먼저 다가와 곁을 내줍니다. 순이는 아직도 젖을 내주느라 몸이 많이 말랐습니다. 하지만 고양이 밥을 내밀면 허겁지겁 먹지 않고 몸부터 부벼댑니다. 순할 뿐만 아니라 고마워할 줄도 압니다. ‘나도 고마워, 순이야.’ 다른 녀석들하고는 언제 친해질지 아직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가까워지겠지요.
순이가 밥을 다 먹으면 성지를 한 바퀴 둘러봅니다. 오늘 오실 순례객들이 평화로이 기도하고 편안하게 쉬다가 가시기를 바라며 묵주를 돌립니다.
 
제가 손골성지에 온 지 어느새 20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얼마나 빠릅니까? 정말 미친 듯이 돌아갑니다. 세월이 빠른 것이 아니라 시간이 빠릅니다.
물도 듣고 바람도 보고 꽃도 맡으러 성지로 오십시오. 어느 성지로든 떠나십시오.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나에게 대해 마련된 은총의 선물을 만나실 겁니다. 멈춤이 필요한 사람이 멈출 수 있는 곳, 거기가 바로 성지니까요.
그렇게 성지를 가꾸고 마련하려면 여러분의 기도와 정성이 필요합니다. 성지를 후원해주시는 한 분 한 분, 고맙습니다. 보내주시는 정성을 소중히 사용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귀한 봉헌으로 누군가는 위로를 만나서, 누군가는 용기를 얻어서, 누군가는 웃음을 찾아서 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순례객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손골성지로 부임해서 참 생각이 많았습니다. ‘이곳에서의 내 소명은 무엇일까?’ 아직까지는 생각의 가닥이 잡히지 않습니다만 하느님의 섭리를 한가닥씩 한가닥씩 발견하고 엮으면 센 동아줄이 되어 저를 미래로 견인해주리라 믿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살짝 하느님께 부탁드려주시길 청합니다.
아,,, 7월 후원회지가 평소보다 늦게 도착할 겁니다. 순전히 제 탓이니 이 또한 용서를 청합니다. 8월부터는 제 때에 부치겠습니다^^
비가 많이 옵니다. 무사히 장마가 넘어갔으면,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요즘 하도 기상이변들이 많아져서 걱정입니다.
건강히 지내시고요, 8월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2024년 7월, 손골성지에서
다미아노 신부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