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마리아상 축복


 

얼마 전 어느 분이 사무실에 와서는 새로 모셔온 마리아상 얼굴에 누가 검댕을 묻혀놓고 갔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낫습니다. 맞아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요.

 

여기, 집에 성모상이 없는 교우분 있으세요? 없지요. 혹시 못 생긴 성모상 있어요? 없지요. 다들 너무너무 아름다운 성모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당연하지요. 사람 중 유일하게 원죄없이 잉태되신 분이고 평생 한 번의 본죄도 짓지 않으신 분이니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이 죄가 없는 분이지, 슬픔도 없었고 불안도 없었고 걱정도 없었고 고민도 없었던 분이라고 여기지를 않아요. 오히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삶의 시련과 고통보다 더하면 더했지 꽃길만을 걸으신 분이 절대 아니시니까요.
고통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시련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가 없어요. 내 힘으로는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늪과 같은 덫에 걸린 야생 노루의 상황, 그걸 겪어 보지 않았는데 어찌 남의 고통에 함께 통증을 느낄 수 있단 말이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절체절명의 결정의 순간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남의 고민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지요? 또 그런 어려움 중에 도움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제대로 남을 도와줄 수가 있지요? 사랑을 받은 그 고마움이 없으니 가지지 않은 것을 어찌 남에게 내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욱 생각해 왔어요. 내가 성모상을 제작할 기회가 생긴다면 절대 예쁘게 만들지는 않겠다고 말이죠. 왜냐하면 혹독한 고민과 고통을 겪으신 그분이야말로 제대로 나를 위로해주고 격려해주실 수 있는 분이니까요.

 

그러다가 이곳 손골성지에 2년 전 왔어요. 오랜기간 교구청과 교포사목을 마치고 처음으로 성지 소임이 주어졌습니다. 부담 당시 저는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고 주교님은 일이 적은 곳이라며 좀 쉬라고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현대인에게 성지의 의미는 ‘정화와 회복의 쉼터’라고 여겼습니다.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한국, 그 속도로 선진국에 신속하게 진입했지만 사람들은 치명적인 후유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유를 잃었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우울증과 분노조절장애, 공황장애로 괴로워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엔 듣지도 못했던 병명들입니다. 게다가 너무나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손골성지는 산골이지만 도시들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습니다. 차로 3.40분 거리에 사는 신자들은 족히 30만 명은 될 겁니다. 그러니 큰맘 먹지 않아도 올 수 있고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쉴 수 있습니다. 게다가 200년 전부터 선교사 신부님들이 쉬다 가신 곳이었으니 위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이곳은 정화와 회복의 쉼터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숨이 안 쉬어지는 절박한 위기들을 겪어봤습니다. 그건 여러분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그때 여기를 가면 숨이 쉬어지고, 누군를 찾아가면 숨통이 트일 수 있다면… 그것이 사목자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여깁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산자락에 아담한 정원을 꾸미고 마리아상을 모셨습니다. 힘들면 여기로 오시라고…

 

작가 섭외를 위한 고민은 없었습니다. 20년 동안 함께해 온 한진섭 작가, 그분이 안 한다면 저도 이 작업을 안 했을 겁니다. 로마에 김대건 신부님 성상 작업을 마친 후라 한국에 있었고, 그 바쁜 와중에 선뜻 마리아상을 만드는 데 뜻을 같이 해주었습니다. 저는 작가에게 우리가 모셔야 할 마리아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약혼녀 마리아는 기대와 긴장으로 결혼을 준비하던 중 가브리엘 천사를 만납니다. 천사를 만난 자체가 크나 큰 두려움이거늘 천사가 알려 준 소식은 더 놀라워 임신, 그것도 성령으로 맘미암은 잉태랍니다. 이해가 되지도, 납득이 가지도 않습니다. 현재 고등학생쯤 되는 나이의 마리아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요.
충분히 미래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파혼당하겠지요. 다른 이는 몰라도 요셉은 알 것 아닙니까? 본인의 아이는 아니라는 걸… 그걸 알고도 결혼할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 평생을 미혼모로 살아야 할까요? 아뇨. 당시 처녀가 임신하면 돌에 맞아야 합니다.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그래서 석투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들 동네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돌을 던져요? 동네 전체의 슬프고도 곤혹스러운 형벌인 겁니다. 게다가 최초로 돌을 던져야 하는 사람은, 부모래요. 우리가 잘못 키워서 우리 마을에 죄가 들어왔다고 그 책임으로 맨 먼저 돌을 집어 던져야 한대요. 정말 두렵죠. 그러니 마리아가 아무리 어려도 파혼과 그로 인한 죽음, 집안의 파탄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을 거예요.
피하고 싶죠. 그래서 말하죠. ‘남자를 모르는 몸인데 어찌 잉태를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자 가브리엘 천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변해 줍니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했단다.’ 마리아는 불가능이 없는 하느님의 일에 순명해야 함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그제야 답변합니다. ‘주님의 종입니다.’ 그럼으로써 세상의 구원하시려는 성부의 뜻을 받아들이고 성령이 임하시고 구세주 성자를 잉태하셨습니다.
하지만 인류에게는 기쁜 소식이지만 정작 성모님이 될 마리아에게는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상황이겠어요. 비록 순종은 했지만 마음은 천근만근이었을 겁니다.

 

이런 내용으로 작가에게 고민의 무게와 순종의 겸손을 담은 마리아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저의 제안 이후로 물려 일 년 동안 마리아를 돌에 담으려 애쓴 작가의 노력과 기도는 제가 잘 알고, 저 또한 매 미사 때마다 작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마리아상의 재료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대리석, 미켈란젤로가 피에타상을 만든 그 유명한 카라라 비안코입니다. 새하얀 대리석인데 누구도 원석 안에 어떤 문양이 들어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조각을 마치고 나니 비스듬하게 문양이 있는 거예요. 저도 그 문양을 보았어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그 문양이 좋아졌어요. 누군가 검댕이라고 한 그 문양이 말이에요. 왜냐면 마리아의 수심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조각에 정성을 다한 작가와 이 성상의 이름을 ‘손골 마리아’님이라고 했어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 성지만의 마리아이시니까요.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셨을 때이니 성모상이라고 하기보다는 마리아상이라고 해야 맞아요.
정성을 다한 한진섭 요셉 작가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선적 고마움은 마리아께서 갖고 계시겠지요? 동산을 꾸민 박종민 스테파노 형제에게도 고맙습니다. 기도로 기다려준 많은 교우님들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성상 축복을 위해 먼길 와주신 수지지구장 서북원 베드로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정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많이 주신 좋아하고 존경하는 형님이십니다.

 

저는 바램이 있습니다. 교우들이 마리아 동산에 올라 나보다 더 충격적인 고민과 괴로움에 처하셨던 마리아께 위로받고 격려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디 단 한 명이라도 자살의 충동에서 벗어난다면 동산과 성상을 만든 땀과 수고가 씻겨지겠습니다.
손골마리아님이 우리 성지가 정화와 회복의 쉼터인 이유의 정점에 자리하기를 청하며 정성되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