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골편지 아홉 번째


손골편지 아홉번째
 
삼월입니다. 춘삼월입니다. 드디어 봄의 문턱에서 편지를 씁니다. 눈이 참 많이도 온 겨울이었습니다. 눈이 미사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눈만 뜨면 눈을 치우러 나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눈으로 인해 미사를 드리지 못한 날이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지 신부인 제 입장에서는 눈 때문에 미사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보다도 주자창이 부족해서 순례 온 교우가 미사를 못 드리고 그냥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나 속상하고 죄송해 왔습니다. 얼마 전 감사하게도 어느 형제님이 성지 옆 부지를 주차장으로 빌려주셔서 큰 시름을 해결했습니다. 한 대의 주차 공간이 아쉬운데 스무 대는 족히 댈 수 있는 공간이어서 너무도 고맙습니다.
아시다시피 성지로 들어오는 마을 길은 좁고 헷갈립니다. ‘하늘에 이르는 길은 좁고 그 문은 비좁다’는 성경 말씀으로 핑계를 대곤 했지만 아무리 길과 문이 좁아도 그 안의 하늘나라는 넓으니 협소한 주차장의 핑계는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 어느 정도 해결을 하게 되어 참 다행스럽습니다. 오시는 교우분들이 덜 불편하도록 더 고민하고 기도하고 애쓰겠습니다.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재를 바르고 흙으로 돌아갈 존재임을, 그러나 육신은 허무로 바스러지지만 영혼은 하늘로 되돌아갈 존재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고도마성高道魔成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도가 높은 곳일수록 마가 낀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하느님과 가까워질수록 마귀의 유혹은 심해지니 맞는 말입니다. 유혹하는 악마들은 어떡해서든 사람과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으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유혹이 심하지 않다면 스스로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하느님과 멀어진 사람에게는 악마가 굳이 유혹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마치 낚은 물고기에게는 미끼를 줄 필요가 없듯 말입니다. 반대로 유혹을 자주, 깊이 느끼는 사람은 그만큼 하느님께 가까이 가 있다는 뜻이니 유혹은 차라리 다행스럽습니다.
 
뜬금없이 운동 얘기를 꺼내렵니다. 축구에서 승부차기가 있지요? 골키퍼가 열 번 중 아홉 번을 막으면 엄청 잘 한 것입니다. 야구에서 타자가 열 번 중 세 번 안타를 치면 연봉 5억, 네 번 안타를 치면 연봉 50억 원은 거뜬합니다. 그러나 유혹의 경우에는 사뭇 다릅니다. 열 번 중 한 번만 넘어가도 진 것입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것은 나무꾼의 말만은 아닙니다.
‘남들도 다 하는데…’ ‘이번 딱 한 번만…’ ‘아무도 안 보는데…’ 어쩐지 귀에 익지않나요? 악마는 공포영화에서처럼 무섭게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럴싸하게 좋아 보이는 것을 들고 손짓합니다. 그리고 나의 약한 부분을 집요하게 노립니다.
유혹과 마주한 나는 어떻습니까? 안타깝지만 끈질긴 유혹 때문에, 나약한 의지와 믿음 때문에 넘어지고 만 적은 없는지요? 넘어져도 포기는 마십시오. 악마의 손을 계속 잡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원래가 포기는 배추 셀 때에나 쓰는 단어랍니다. 오뚝이처럼 즉시 일어나고 넘어진 곳에서 다시 시작하십시오. 쓰러졌다고 경기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권투에서도 안 일어나면 KO이지만 일어나면 그저 다운일 뿐입니다.
그러니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을 바로잡으십시오.”(2코린 13,11) 악의 유혹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콜로 3,15) “믿음의 방패를 잡아 악한 자의 불화살을 막아서 끄십시오.”(에페 6,16) 라는 말씀을 지팡이 삼아 일어섭시다.
마라톤은 40여km이고 사순시기는 40일입니다. 손골성지 후원가족 모두가 부활 때까지 유혹을 넘어 완주하시기를 바라며 주님의 은총을 겸손되이 청합니다. 좋은 소식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손골성지에서 다미아노 신부 Dream.